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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자의 역사이야기-⑮ 고려는 왜 멸망했을까?

개국 제13회 창왕 옹립

사진: 조민수의 묘

이성계의 우군과 조민수의 좌군은 회군이라는 한마음 한 뜻으로 최영과 그의 세력들을 축출했다. 그러나 뭉쳤으면 다시 갈라지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라 할 수 있다.

위화도 회군의 성공으로 이성계와 조민수는 고려의 실권을 장악했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의 영역이 시작된다. 논공행상과 쿠데타 이후의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단 이들은 우왕을 폐위시켰다. 그리고 우왕은 강화도로 유배를 가게 됐다. 이제 누구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할 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실권자인 이성계와 조민수가 만났다. 이성계는

– 조 장군, 어떻소이까. 아무래도 새로운 국왕은 왕씨 문중에서 골라야 하지 않겠소?

– 그야 당연지사 아니겠소. 이 장군 그렇게 하십시다.

지금 들으면 당연한 말이다. 고려는 왕씨의 나라니 왕씨 문중에서 왕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훗날 폐가입진(廢假立眞)이라고 불리는 사건의 명분이 우왕은 공민왕의 자손이 아니라 신돈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우왕의 이름은 왕우가 아니라 신우라고 불렸다. 그러나 현재 학계에서는 이는 당시 신진사대부의 조작이며, 공민왕의 아들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개성의 이성계 사저에 정몽주, 정도전, 조준 등 신진사대부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정도전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 어떻게 되셨습니까, 장군.

– 왕씨 문중에서 차기 주상을 옹립하기로 했소.

– 장군, 뭔가 이상합니다. 조민수가 그리 쉽게 동의를 해줄 사람이 아닙니다.

정몽주의 말이었다.

다음날 아침 도당회의가 갑자기 소집됐다.

– 아직 때가 아닌데 갑자기 무슨 회의란 말인가. 이보소 부인 내 관복 좀 챙겨 주시구려.

모든 대신들이 모인 가운데, 조민수가 앞에 나와 무언가를 읽기 시작했다.

– 이번에 새로이 옹립될 주상전하는 원자인 왕창저하로…

– 아니 이게 무슨 말이요! 조 대감!

이성계가 소리를 지르면서 항의했으나 조민수는 묵묵히 창왕의 교지를 읽을 뿐이다.

– 한산군 이색을 문하시중에, 이성계와 조민수를 수문하시중, 조민수를 양광, 전라, 경상, 서해, 교주도 도통사로 임명하니…

전날 밤 이성계와 회동을 마친 후 조민수는 이색을 만났다.

– 어떻습니까. 한산군 대감, 모든 것을 이성계에게 빼앗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인임 대감께서 저에게 그러시더이다. 이성계는 우리와 결이 다르다고. 같은 고려 하늘아래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대감께서 문하시중을 맡아 주십쇼. 고려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 소생이 문하시중을 맡은 들 우리 제자들은 이미 이성계 사람이 됐소. 우리 둘이 뭘 어쩌겠소.

–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소생이 군권은 계속 틀어쥐고 있을 예정입니다. 대감께서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어떻게 꾸려 나갈까 그 생각만 하십쇼. 그럼 승낙하신 줄 알고 이만 물러가겠소이다.

조민수가 교지내용을 읽고나서 이성계는 조민수를 따로 만났다.

– 이보시오. 조민수 대감, 우리 얘기와 다르지 않소. 왕씨 문중에서 주상을 옹립하자고 하지 않았소. 그리고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소. 이제 겨우 9살이란 말요

– 한산군 대감을 문하시중으로 내세우자는 것은 대감의 제안이었습니다. 문하시중의 결정이 그러한데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소. 그리고 폐주나 지금의 주상이 신돈의 아들이라는 말은 사대부들의 주장아니요? 그 증좌가 있소이까?

– …

이번 교지에서 이색이 문하시중을 차지하고 그의 제자들이 조정에 대거 등용됐으나, 몇몇 사대부들은 조정의 이 같은 조치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도당회의가 끝난 그날 저녁

– 스승님! 스승님!

– 아, 삼봉 네가 웬일이냐 기별도 없이?

– 스승님이십니까? 스승님께서 신창을 왕으로 추대하자고 하셨습니까?

– 도전아, 주상전하시다. 누가 들을까 무섭다. 어찌 말을 그리하는게냐?

– 스승님, 결국 권문세가 이인임 사람인 조민수와 손을 잡으신 겁니까?

– 난 이성계를 믿을 수 없다. 그는 고려를 무너뜨릴 사람이다.

– 왜요? 고려가 무너지면 안 됩니까? 썩어 문드러진 나라 뒤엎고 새 나라를 만들면 안되는 겁니까?

– 아니 이 녀석이!! 갈수록 가관이구나. 문하시중으로서 지금 네가 한 말 역적으로 죄를 물을 수 있어!!

-삼봉, 삼봉! 스승님께 이게 무슨 말인가. 어서 나가세

정몽주가 뛰어들어왔다.

– 그 잘난 고려, 스승님이나 아끼고 사랑하십쇼. 저는 더는 못살겠으니까…

– 아니 저… 저런

– 아 스승님, 삼봉이 좀 흥분했나 봅니다. 이 사람 술도 안 마셨는데 왜 이러나… 제가 잘 얘기할 테니 스승님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십쇼. 삼봉, 자! 가세

두 사람은 이색의 집을 빠져나왔다.

– 이보게, 삼봉, 문하시중 스승님께 무슨 망발인가. 스승님께서 재상에 오르신거에 대해 감축을 못할 망정, 이 사람아 자중하시게. 그리고 또 고려에서 못살겠다는 건 또 뭔가?

– 포은, 자네도 뜻을 정하시게. 우린 이제 이성계 장군과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 자네, 이게 무슨 말 인가. 진심이었나? 오늘일은 못들은 걸로 함세.

신진사대부들이 조정에 대거 등용되면서 토지개혁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임견미, 염흥방 사건을 목격했던 조민수는 자신의 토지를 국가에 내놓음으로써 자신의 자리와 목숨은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재상에 오름으로써 그 동안 원치 않게 내놓았던 땅들을 조금씩 회수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고려 신진사대부들의 개혁정책과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아무리 그가 고려 군권을 장악했고, 이색과 손을 잡았다고 한들 대다수의 신진사대부들은 이제 이성계 사람이었다.

대사헌 조준이 상소를 올렸다. 조준은 상소에서 ‘조민수는 재상이라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다른 이들의 노비와 농토를 뺏는 일이 극에 달아…’

이로써 조민수는 유배형에 처해졌고 그의 세력들도 함께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제 더 이상 창왕을 지켜줄 권신은 없다.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은 보위에 앉힐 다른 왕씨집안 사람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